강원도 설악산 흔들바위로 향하는 등산로에는 탑처럼 쌓은 박스와 짐을 지게로 지고 나르는 지게꾼이 있습니다. 80kg이 넘는 짐을 지고도 산 정상까지 날쌔게 오르고 내리는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6) 씨입니다. 160cm가 되지 않는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다르게 '설악산 작은 거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하루에 적게는 4번, 많게는 12번이나 설악산을 오릅니다. 하지만, 힘만큼이나 강한 것은 그의 선행입니다. 지적장애 2급의 아내와 그 아내보다 더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을 챙기면서 시작된 선행은 아들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 혼자 사는 노인에게까지 무려 24년간 꾸준히 봉사와 쌀 기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80kg의 지게를 지고 올라 받은 품삯의 90%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는..
어떤 마을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개울가에서 아름다운 돌을 주웠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아들은 돌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돌 좀 보세요. 친구들과 놀다가 주웠는데, 너무 예쁘지 않나요? 저는 이 돌처럼 늘 반짝이는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창가에 놓아둔 초를 가지고 와 성냥으로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어두웠던 방안이 금세 환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촛불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너는 이 촛불 같은 사람이 되어라!" 후하고 불면 바로 꺼지는 촛불 같은 사람이 되라니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들이 주워 온..
저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 때문에 청소년기에 아버지라는 버팀목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실히 느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늘 그렇게 아버지의 등을 그리워하다가 어느덧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마흔 살,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되면서 삶을 바라보는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하루는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무인도에 꼭 하나를 가지고 간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거야?" "음.. 자기는 안 되겠다. 무인도 가면 너무 고생하잖아. 내가 좋자고 자기를 고생시킬 순 없잖아.."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무인도에 가도 고생은 하지 않는다며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귀여운 억지를 부립니다. "그래? 그렇다면 당연히..
원양어선을 탓던 경험 많은 선장들은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면 세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빨리 뱃머리를 돌려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태풍의 속도보다 빨리 도망갈 수 있는 배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좋지 않습니다. 어느 쪽으로 돌리든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그 배는 바람을 맞는 면적이 더 커지기 때문에 전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번째는 모든 문을 꼭 걸어 닫고 전속력으로 태풍을 향해 돌진하는 것입니다. 태풍의 세기가 강하게 느껴지겠지만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단거리 코스는 이 방법 뿐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원리와 같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는 절대 당황하거나..
1987년 머리와 몸이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며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의사 벤 카슨은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흑인 빈민가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전교 꼴찌를 맡아 놓을 정도로 성적이 형편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또한 초등학교 4학년 학력이었는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여 다량의 수면제를 먹기도 했습니다.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전문대학까지 졸업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변화된 영향력을 아들에게도 주고자 몇 가지 규칙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늘 집에서 TV를 보던 아들에게 일주일에 두 프로그램만 볼 수 있도록 제한했고 숙제를 해야지만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규칙이 있는데 일..
대학 입시 면접시험을 앞두고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합격한 대학생이 한 학기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경비 아저씨에게 양복을 선물한 사연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한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이 서울대생은 중·고교 시절, 하루 10시간 넘게 식당에서 일을 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고 합니다. 사는 곳은 19.8㎡ (약 6평) 남짓한 반 지하방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 ‘원서 접수비’가 문제가 될 정도로 어려운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여러 곳에 지원할 수 없어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대학 두 곳에 간신히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 한 곳이 서울대학교였고, 그는 어머니에게서 5만원의 차 비를 ..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자신의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농사를 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일찍부터 이재술(理財術)이 뛰어났던지 논(畓)에서 돈 버는 방법을 연구해 냈습니다. 당시의 논 1마지기(200평)에서는 농사가 잘 되어야 쌀 2가마니가 생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회장은 시험삼아 논 1마지기에는 벼를 심고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1마지기 200평에는 '미꾸라지' 새끼 1,000마리를 사다가 봄부터 길렀습니다. 가을에 수확 때까지 양쪽 모두 똑같은 비용을 투입하여 각각 재배하고 길렀는데 벼를 심은 논에서는 역시 쌀 2가마니가 생산되었고 미꾸라지를 기른 논에서는 커다란 미꾸라지가 약 2,000마리로 늘어났는데, 전부 잡아서 시장에 팔았더니 쌀 4가마니 값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NBA에 새로운 역사를 쓸 아프리카 전사가 등장했습니다. 그의 키는 무려 232cm였고 그의 팔 길이는 리그 역대 1위를 달성할 정도로 '거인'의 모습을 한 선수였습니다. 이 선수의 이름은 마누트 볼. 아프리카 남수단에 위치한 딩카족 출신이었고 소를 재산으로 여기는 부족의 문화로 인해 마누트 볼은 학교를 나가는 대신 어린 시절부터 소 떼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리그 농구선수였던 사촌의 권유로 농구를 접하게 되었고 큰 키를 가진 마누트 볼에게는 적합한 운동이었기에 그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농구 선수로 활동을 하던 중 NBA 행을 제안받아 19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 마누트 볼은 NBA 드래프트에 참가 자격을 받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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