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현세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천 겁의 연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거늘, 그렇다면 부모님과의 인연은 전생에 몇 억겁의 인연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런데도 내 가슴에 각인된 불효의 죄스러움이 너무 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내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딸로 태어난 제가 남편과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부모님의 가슴에 처음으로 피멍을 들게 했습니다. "엄마, 아빠! 딱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결혼식장에서만큼은 큰아버지 손 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철썩!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아있던 오빠한테 뺨까지 얻어맞았지만 저는 단호할 만큼 막무가내 였습니다. 그러잖아도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40년 전 가난하게 살던 저희 집은 매서운 찬바람보다 배고픔이 더 강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2월쯤 되었을 때 초등학생이던 저는 아버지의 귀가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제가 더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날따라 더욱 늦어진 아버지의 퇴근... 이윽고 언덕 너머로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크게 소리치면서 달려오는 저를 보고 아버지는 멋쩍어 하시면서도 환히 웃으셨습니다. 배고팠을 아들 생각에 미안해진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서둘러 식당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밤 9시가 다 된 시각에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조그만 식당 하나만 불이 켜져 있습니다. 저희 부자는 어렵게 식사를 부탁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수..
제가 25년 전에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했을 때입니다. 살벌한 내무반 공기도 싫고, 괴롭히는 선임 때문에 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무렵... 저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함께 지낼 때는 너무도 조용하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저희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한 자 한 자 힘 있게 눌러쓴 아버지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들아, 나도 강원도에서 3년 가까이 복무를 마쳤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손바닥처럼 보이던 그곳에서 앞으로 3년 넘게 근무해야 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했다. 그런데 살면서 그때 그 힘들었던 군대 생활이 삶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겪고 있을 때는 그 일의 가치를 미처 알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은 힘들고 ..
언니는 가족과의 연락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아버지가 가게에서 일을 심하게 시켰기 때문에 언니는 항상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결혼할 남자를 데려왔을 때도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결혼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로 계속 사소한 싸움이 이어지다가 아버지와 언니는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그 길로 언니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저는 언니에게 연락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본 언니는 아직도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 듯 매우 놀라거나 슬퍼하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후, 집으로 언니가 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
저는 아버지가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하셔서 평생 허드렛일만 하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학교 앞 도로 길을 새로 포장했는데 하필이면 그곳에서 얼굴이 까맣게 변해버린 아버지가 일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그냥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아버지가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 피해서 다녔는데 아버지가 저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XXX 학교 가느냐?" 하지만 저는 아버지를 못 본 척하며 급하게 학교로 걸어갔습니다. 다음날에도 아버지는 그곳에서 일하고 계셨지만 저를 보시고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 역시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기보다는 친구들이 전혀 모르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
저희 집안은 남들이 말하는 교육자 집안입니다.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을 마치셨고, 그 할아버지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하셨던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이십니다. 그런 아버지와 저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시며 누굴 칭찬하는 법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더구나 공부에 별 관심과 재능이 없던 저에게 아버지의 분노는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도 중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공부도 하고 대학교도 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에는 취미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방학 때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요리사가 되고 싶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요리사라는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저희 결정에 아버지의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대학교수로..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손짓을 하였습니다. 고목처럼 여윈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고 계신 분은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에게 우산을 하나 건네주고는 당신 먼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습니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든 나는 아버지에게 "고마워"라고 말했지만, 그다음부터는 특별히 할 말이 없어 잠자코 뒤따라갔습니다. 그 후로는 비가 올 때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우산을 건네주셨습니다. 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의 마중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퇴근길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참 순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잘 받아줍니다. 하지만 베푼 은혜가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래전 저희 집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는 아버지의 죽마고우에게 아버지가 큰돈을 빌려주시게 되었는데 그 친구분은 몇 년 안 되어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고 잠적해 버린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희 집은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저라면 그 친구분을 원망하며 고소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친구분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본인보다 더 속상해하셨습니다. "당신은 왜 항상 속고만 다녀요? 지금 우리 삶도 빠듯한데 무슨 여유가 있다고 친구한테 그렇게 큰돈을 빌려주었어요. 이제는 친구들과 인연 끊고 살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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