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써버린 할아버지의 노후는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몇 푼 안 되는 노령연금을 쪼개 쓰는 할아버지는 친구들 만나기도 눈치가 보여 자주 외출도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래전 이민 갔던 친구가 잠시 귀국하던 날 할아버지는 그 친구와 잠시나마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범아, 혹시 10만 원 빌려 쓸 수 있겠니?" "아버지, 손자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요. 애들에게 쓸 돈도 항상 모자란 것 알고 계시잖아요." 아들은 마음에는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하며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고 출근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몰래 용돈..
어린 시절 저는 병 우유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출근할 때마다 막둥이인 저에게 병 우유를 하나씩 사 주셨습니다. 어려운 살림 탓에 먹을거리가 늘 부족했지만 아버지는 저에게 우유를 주는 일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아버지는 치매로 인해 가족들도 잘 알아보시지 못하고 계시지만, 아버지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식구들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님이 어린 시절 병 우유에 대한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가 사 주시던 그 우유는 사실 아버지의 출근 교통비와 맞바꾼 것이었습니다. 버스를 탈 수 없기에 서둘러 일찍 일어나 회사까지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막내 우유 사 주는 게 아버지에게 어떤 것보다 큰 행..
제가 학교 다닐 때 만 해도 선생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고 배울 정도로 선생님을 존중했는데, 이런 선생에 대한 존중은 특히 유대인 사회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자기 아버지보다 선생님을 더 귀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일 아버지와 선생이 함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두 사람 중 한 사람 밖에 구해 낼 수 없을 때는 아들은 선생님을 구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유대인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대인 가정에서의 아버지는 자녀에게 아무런 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해해선 안됩니다. 히브리어의 '아버지' 라는 말에는 교사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가정교사인 셈입니다. 이처럼 유대사회에서는 선생을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중 스페인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한 '세계의 수도'에서는 '파코'라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아들이 어느 날 집을 나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기 위해서 아버지는 마드리드로 가서 화해하기로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연락할 길이 없었던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신문에 광고를 내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파코에게, 내일 12시에 신문사 정문 앞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오길 바란다. 아버지는 너를 이미 다 용서했다." 그다음 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신문사 앞에는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800명의 젊은이가 광고를 보고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
지갑에서 돈 훔치는 12살 아들의 나쁜 버릇을 싹 고쳐준 아빠의 눈물나는 "한마디" 대학생 A씨는 어린 시절에 나쁜 손버릇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자꾸 아빠 지갑에 손을 댔다. 12살 무렵이었다. 아빠가 좋게 말씀하시며 A씨를 타일렀지만, 그때 뿐이었다. 뒤돌아서면 다시 A씨는 아빠 지갑에 손을 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진지하게 A씨를 불렀다. 그러고는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엉엉 울면서 말이다. A씨는 그 순간 머리가 띵해졌고, 나쁜 버릇을 싹 고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17년,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A씨가 직접 경험한 일화가 공개됐다. A씨는 과거 12살 무렵에 아빠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고 말하며, “아빠에게 계속 혼나고, 잔..
나는 꼴찌였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ᆞᆞ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
"아버지,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사셨습니까? 왜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나셨습니까?" 아버지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만 남아 있었기에 제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오히려 없으면 더 좋았을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는 한 번도 아버지를 그리워한 적이 없었고 아버지의 필요성을 느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의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서서히 ‘좋은 아버지’에 대한 열망 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따뜻한 가슴으로 안고 싶습니다. 더 이상 제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가슴 따뜻하게 부를 수 없었던 저였기에 저의 딸에게 만큼은 마음껏 불릴 수 있는 ‘좋..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아버지 냄새가 난다. 사립문 안마당과 뒷간, 손수 만드신 간이목욕실 그리고 떠받칠 것이라곤 가벼운 슬레이트 지붕뿐인 쪽마루 기둥, 텅빈 헛간과 아무도 기거하지 않는 사랑방에서도 거름과 땀, 흙냄새가 조화를 이룬, 그렇다. 분명 아버지 냄새다. 세상의 온갖 풍상으로 등은 휘어터지고 구부정하게 늙어가는 나무 모양, 아버지는 그렇게 늙으셨다. 폭염과 모진 눈보라, 비바람 속에서도 오직 가족만을 위한 그늘을 만들어서 덮어주고, 정작 자신은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이 혼자서만 아픔을 참고 견디며 가진 것을 하나하나 떨어뜨린 동구 밖의 떡잎나무였다. 그 나무가 이젠 뒷밭에 홀로 외롭게 심겨졌다. 잡풀, 억새, 엉겅퀴들 틈새에서 덜 외로우시려나. 하늘 끝까지 가 닿은 풀벌레소리에 귀를 쫑긋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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