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을 안겨준 은인

한(漢)나라의 명장 한신(漢信)이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집 살림은 매우 가난하여 남의 집에 얹혀 살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집주인은 한신을 홀대하여 밥 한끼 제대로 먹여주지 않았다.

한신은 할 수 없이 그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집에서 굶어죽으나 밖에서 굶어죽으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한신에게 구세주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하루는 한신이 물고기라도 잡아먹을 요량으로 강가에서 손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데,

마침 그곳으로 빨래를 하러 온 여인이 그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런, 젊은 나이에 강가에서 고기나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니........"

여인은 곧바로 집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날라왔다. 그리고 그 후에도 수십일 동안 한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다.

한신은 너무 고마워 여인에게 은혜를 꼭 갚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여인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전혀 

생색을 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젊은이가 끼니를 굶어 풀이 죽은 모습이 하도 딱해 그런 것 뿐이라오."

그 후 인근 마을의 한 젊은이가 한신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신을 불러 

모욕을 주었다.

"사내놈이 오죽 못났으면 여편네가 날라다주는 밥을 먹고사느냐? 그래도 네가 사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면서 그는 한신에게 남자라면 자신을 칼로 찔러보라고 윽박질렀다. 만약 그럴 용기가 없으면 

자신의 발 밑으로 기어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찔러 죄를 짓고 싶지 않다!" 그러자 젊은이는 한신을 더욱 깔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나를 찌를 용기도 없는 놈이 무슨 큰소리인가? 결국 너는 나를 찌르지 못했으니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가라."

젊은이의 말에 한신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 그가 시키는 대로 기어서 

가랑이 사이로 지나갔다.

그러자 주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한신은 초(楚)나라의 임금자리에 올랐다.

어느 날, 그는 과거에 신세 진 사람들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강가로 먹을 것을 날라다주던 여인에게는 1천 금을 주었다. 그리고 한 때 얹혀 살던 집주인에게는 

1백 전을 주었다. 그 집 주인에게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보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지 못했으니 당신은 소인이오.

그러니 당연히 대인의 면모를 갖춘 저 여인보다 적은 돈을 내린 것이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을 칼로 쯔르라고 종용하며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만든 젊은이에게는 

벌 대신 관직을 주었다.

신하들은 한신의 그 같은 조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신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하들을 향해 말했다.

"만약 예전에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 자를 칼로 찔렀다면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엇을 것이다. 나는 그 날의 수모를 잊지 않으려고 매일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오늘의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러므로 어찌보면 저 자는 나의 은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던 그 젊은이는 한신의 넓은 도량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 사서삼경(미리내공방 편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