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옥탑방에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면서도 성실히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청년은 어느 날 근처 빵 공장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년은 빵 공장에 입사 지원을 하였고 회사에서 몇 가지 질문 사항을 적어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 사항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내용이라 고민 끝에 자신만의 답을 써서 내야 했습니다. 당연히 떨어졌을 거로 생각했던 청년에게 며칠 후 합격을 했으니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빵 공장 사장님이 특별히 합격시켰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이후 사장님과의 만남에서 물어보았습니다.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왜 합격시켜주셨나요?" 그러자 사장님은 웃으면서 청년이 제출했던 질문지의 글을 ..
1923년 3월 3일. 20대 청년 두 명이 미국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사 문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간결한 형식의 정보를 전달하는 잡지를 만들고자 시사주간지 타임지를 창간했습니다. 타임지는 미국 뉴욕시에서 발행되는 3대 주간지로 손꼽히며 매년 연말 '올해의 인물'과 '타임100(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는 거로 유명합니다. 창간을 했던 두 젊은 청년의 이름은 헨리 R. 루스와 브리튼 해든이었는데 처음 그들이 창간 계획을 주위에 말했을 때 사람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되겠어요?" 그러나 두 청년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할 수 있다는 이상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뉴욕시 지하도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문안을 ..
국내 한 대기업의 신입사원 면접날이었습니다.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새벽부터 출근하는 사원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그날 면접을 보는 지원자였는데 좋은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어 새벽부터 나와 음료수를 돌린 것 이었습니다. 타 업체의 불법홍보인 줄 알고 경비업체의 제지를 받아 100여개 밖에 돌리지 못했지만 그 중 하나가 그날 면접관에게 전해졌고, 열정을 인정 받아서인지 면접에도 합격했습니다. 한 대학생은 회사를 향한 열정을 보여주겠다며 서울에서 울산까지 7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갔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취업을 위한 요즘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을 알리는 이야기로 한때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간절한 만큼 열정을 품습니다. 간..
프랑스 최고의 은행가라 평가받는 '자크 라피도'의 청년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던 자크는 고용주들로부터 언제나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청년이 되어 이제 자신의 평생직장을 정해야 하는 자크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은행원이 되기로 결정하고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은행원이 자신의 꼼꼼한 성격과 능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직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크가 찾아간 은행에서는 자크의 지원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복장이 매우 허름하군요. 수많은 고객을 대하는 우리 은행에서 그 모습은 어울리지 않네." 실망한 자크가 은행 문을 나서는 데 은행 바닥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물건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핀 하나가 떨어..
가난하지만, 심성이 착한 한 청년은 신문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신문 뉴스에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야기가 가득했고, 힘과 권력을 가졌지만 부패한 사람들의 행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힘과 권력과 지혜가 있다면, 세상을 위한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배움도 짧고 가난한 청년은 세상을 위한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조차 몰라, 영국의 철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에게 찾아가 조언을 청했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제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1900년대 초반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자배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배우에게 어떤 영화의 섭외가 들어왔는데, 일본계 자금이 투자되어 출연료가 일반 영화의 몇 십 배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거절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떻게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겠습니까?" 1900년대 초반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남자배우 김덕린 씨는 독립운동가 김필순의 아들이었습니다. 돈으로 설득이 안 되자 훗날 일본 쪽에서는 협박을 하며 제국주의 영화에 김덕린을 출연시키려 했으나 김덕린은 독립투사의 아들답게 의연히 대처했습니다. "기관총으로 나를 겨눈다고 해도 결코 출연하지 않겠습니다." 김덕린은 비록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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