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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자배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배우에게 어떤 영화의 섭외가 들어왔는데, 일본계 자금이 투자되어 출연료가
일반 영화의 몇 십 배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거절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떻게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겠습니까?"
1900년대 초반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남자배우 김덕린 씨는 독립운동가 김필순의
아들이었습니다. 돈으로 설득이 안 되자 훗날 일본 쪽에서는 협박을 하며 제국주의 영화에
김덕린을 출연시키려 했으나 김덕린은 독립투사의 아들답게 의연히 대처했습니다.
"기관총으로 나를 겨눈다고 해도 결코 출연하지 않겠습니다."
김덕린은 비록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였으나 출세나 돈을 버는 일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영화라는 문화로 아시아의 청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그의 목표였기에 그는 돈과 무력 앞에서도 떳떳하게 소신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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