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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플리트장군은 1951년 4월 리지웨이 장군의 후임으로 제8군 사령관에 취임하여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의 외동아들인 제임스 A. 밴 플리트 주니어도 신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돕기 위해 미 공군
대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아래 편지는 지미 밴플리트 2세 공군 중위가 이제 막 해외 근무를 마쳐 한국전에 참여할 의무가 없었음
에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한국전에 참여하면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편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머니 저는 자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저는 조종사이기
때문에 機首에는 폭격수, 옆에는 항법사, 後尾에는 기관총 사수와 함께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지금 한국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드디어 저도 미력한
힘이나마 아버님에게 힘을 보탤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미국이 위급한 상황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 애인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1952년 4월 2일. 밴플리트 주니어는 압록강 남쪽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새벽 3시
김포 비행단의 레이더와 접촉한 후 북으로 날아가던 중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즉시 수색작전이
시작되었지만 4월 4일 밴플리트는 미 제5공군 사령관으로부터 그의 아들이 폭격비행 중 실종되었고
지금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지미 밴플리트 2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무모하다.”
이후 밴 플리트는 1957년에 미국 최초의 한국 관련 비영리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설립하였다.
이후 미국과 한국 사이의 우호증진에 큰 기여를 하였고, 창설자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한미관계의 우호증진에 기여한 사람에게 '제임스 A. 밴 플리트 상'을 수여하고 있다.
밴 플리는장군은 1992년 플로리다 주 포크 시티에서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워싱턴 한국전 기념비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역사를 잘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자유가 없으면 어떻게 다를지도 잘 알기
어렵다. 자유 속에서 살다 보니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엄중한 책임이 있다. 자유는 한번 얻어졌다고 영원한 게 아니다.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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