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기 위하여 지팡이를 잡고 길을 나섰습니다. 제가 사는 김해에서 병원이 있는 부산까지 한 번에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10년 전, 차 사고로 뇌병변 장애가 생겼습니다. 사람들로 빼곡한 버스 안에서 저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꼭 쥔 채 위태롭게 서 있었습니다. 그때, 한 중년 남성이 저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제 앞자리 여학생이 일어나 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기뻐서 여학생의 책가방을 제가 안고 갔습니다. 깜박 잠이 들었는지 한 할머니가 저를 깨웠습니다. 눈을 떠보니 마침 병원 정문이 보였습니다. '내가 병원에 가는 걸 어떻게 아셨을까?’ 생각하면서 버스에서 내리자 할머니도 따라 내리셨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이 오르..
단편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의 주인공이기도 한 강영우 박사는 어린 시절이 매우 불우했습니다. 어린 나이인 13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이듬해 중학교에 다니던 중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곤 안타깝게도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실명 소식을 듣곤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고 몇 년 후에 의지하던 누나까지 죽는 바람에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서울맹학교 기숙사로 보내져 암흑 같은 10대 시절을 보내지만 꿈이 원대했던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를 감사하자'는 말을 듣고는 그의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됐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이때 자원봉사자로 찾..
김해 삼계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강현준 약사는 19년 전 당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그는 하루아침에 앞으로 못 걷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대로 좌절하기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전과 달라진 신체로 인해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장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움직임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다른 직업에 비해 활동량이 적으면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직업으로 '약사'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약사가 되기까지 물리적인 상황과 신체적인 불편함이 있음에도 절대 좌절하지 않고 매 순간 노력하며 삶을 그려온 그는 약국을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희..
미국의 '앤 그루델'은 어린 시절 구순구개열 장애로 인해 학교 친구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소녀였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지만 앤이 자랄 때만 해도 구순구개열 수술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간혹 친구들이 그녀의 입술에 관해 물으면 사고로 생긴 상처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삐뚤어진 입과 부정확한 발음을 타고났다는 것은 앤에게 끔찍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늘 우울증에 시달리며 부모를 원망하고 친구를 기피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앤이 다니던 학교에서 속삭임 검사(The Whisper Test)라는 것을 시행했습니다. 검사는 칸막이를 치거나 학생이 한쪽 귀를 막은 채, 선생님이 작게 말하는 소리를 따라 말하게 하..
1987년,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제니퍼 브리커(Jennifer Bricker)'. 부모는 장애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었는데 다행히도 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홀로서기'를 바란 양부모의 지원 속에 제니퍼는 보조 기구 없이 두 팔로 뛰는 방법을 배웠고 소프트볼, 농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독립심 강한 소녀로 자랐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었습니다. 제니퍼는 체조선수인 도미니크 모치아누의 연기에 반해 체조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가족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으며 제니퍼는 전미 청소년 체육대회 지역예선 1위, 전국대회 4위 등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충..
1988년 9월 23일, 미국 유타주에 사는 한 부부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부부는 아이에게 '매튜'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축복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매튜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와 전신 마비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출산 직후 의사들은 매튜가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매튜는 그로부터 11년 뒤인 1999년 2월 21일 잠든 채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중하지만 고통스러웠던 11년이었습니다. 아빠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이 예고됐던 아들이 영원히 잠드는 곳을 마련하면서 마지막 선물을 계획했습니다. "아빠는 네가 있는 그곳이 슬픈 곳이기를 바라지 않아 너는 너무도 밝고 따뜻..
1968년 9월 28일, 스웨덴 하보 마을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레나 마리아(Lena Maria)는 선천성 신체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없었고, 한쪽 다리는 짧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국제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차지했고, 발로 피아노 건반을 치며 스웨덴의 스톡홀름 왕립 음악학교에 입학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부른 가스펠 송은 음반으로 제작 되었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는 부모님에게 장애아동을 위한 전문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것을 권했습니다. 중증장애인을 평생 돌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의 장애를..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유일하게 미국 대통령직을 4번 연임하였고, 경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극복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큰 장애가 있었습니다. 1921년 8월, 그는 캐나다 캄포벨로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소아마비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때 루스벨트는 겨우 39세로 정치가로서는 어린 청년이나 다름없는 시기였습니다. 결국 다리를 쇠붙이로 고정한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그는 자신의 정치 인생이 빠르게 끝나버렸다고 절망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부통령 후보에까지 올라설 정도로 능력 있고 열성적이던 그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계속 지켜보던 아내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비가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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