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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최치원은 12살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독 엄했던 아버지는 "10년 안에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신분이 낮으면 벼슬을 할 수 없었던 신라 시대에 유일하게 골품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당나라의 과거에 합력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에 도착한 최치원은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했고, 뛰어난 문장가로 인정받았지만
뒤숭숭한 당나라 사정에 크게 쓰임 받지는 못하고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신라에서는 유학파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요직을 맡았고,
외국으로 보내는 서신을 도맡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런 최치원을 두고 당시 신라에서는 '글솜씨를 타고난 사람, 세기에 한 번 나올 천재'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평을 들은 최치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말하는데 이는 전혀 틀린 이야기입니다.
남이 백의 노력을 할 때 나는 천의 노력을 했을 뿐입니다."
세상에 뭐든지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타고난 것 같아 보이는 천재들도
남몰래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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