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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다보면 여러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관계에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담고,

그 마음이 표현되는 것이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신뢰가 깨진 일이 있었다면 말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마음으로 하는 약속도 있다. 혼자 마음으로 하는 약속이자 다짐이니

굳이 지키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으로 한 약속을 지켰던 이가 있었다.

중국 전한시대 역사학자 사마천이 쓴 '오태백세가편(嗚太伯世家篇)'에 나오는 계찰이란 인물이다.

계찰은 춘추시대 오나라 왕수몽(BC.585~561 재위)의 네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네 형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그래서 수몽은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절개가 굳은 계찰은 거절했다. 위로는 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수몽의 유지를 받들고자 그의 형들은 왕위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계찰에 이르도록 했다. 그의 차례가 되었는데도 계찰은 아예 몸을 피하고 또 다시 거절했다.

그리하여 셋째 이매의 아들 요(僚)가 즉위했다. 이에 계찰 큰형의 아들이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켜 요를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합려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는 어디에서든 빛이 나기 마련이다.

왕위를 거부한 계찰이지만 그 뛰어난 능력을 알기에 그는 외교가로서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계찰은 오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큰 역할을 했다.

계찰은 당대의 최고의 재상들이라 할 수 있는 제나라의 재상 안영, 정나라의 재상 자산, 진(晉)나라의

대부 숙향 등과 교류했으며 여러 나라를 돌며 제후들을 만나 친분을 가졌다.

한번은 계찰이 외교 임무를 수행하면서 서(徐)나라의 왕을 만나게 되었다.

서왕은 계찰이 가진 보검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계찰 역시 보검을 탐내는 서왕의 마음을 눈치 챘지만 선뜻 검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아직 사신의 자격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계찰은 이미 그때 일을 마치면 보검을 서왕에게 선물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고 난 후 다시 서나라를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서왕은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딱히 말로 약속한 것도 아니라서 계찰이 서왕에게 검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찰은 서왕의 무덤을 찾아 무덤 옆의 나무에 자신의 보검을 걸어놓았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그것을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그를 따르던 종자(從子)가 의아해서 물었다.

"내가 이미 마음으로 그에게 검을 주기로 한 것이라 주는 것일뿐이다."

서왕의 생존여부와 관계없이 그에게 검을 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검은 서왕의 검이라는 말이다.

계찰이 검을 나무에 걸었다는 말에서 '계찰괘검(季札掛劍)'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일화에서 '마음으로 허락하다'는 뜻의 '심허(心許)'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

비록 말로 약속한 것이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 허락한 일은 꼭 지킨다는 의미의 이 일화는 말을

가볍게 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입 밖으로 내지 않았어도 스스로 마음 속으로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왜 입으로 하지도 않은 약속을 지켜야 해? 누가 알아준다고?"

이해관계 뚜렷한 오늘날이라면 이런 말을 듣기 십상이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계찰이 가벼운 사람이었다면 서왕에게 섣부른 약속을 했을 지도 모른다. 주기로 마음은 정하되 섣불리

약속을 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모습에 대해 <사기>의 저자 사마천 역시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의 끝없는 경지를 사모한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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