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업가가 있었다. 이 사람이 너무 힘이 들어 하루는 어떻게 할까 걱정하다가 기도하는 가운데 한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수요 염려 상자'라는 상자를 만들어 놓고 염려거리가 생기면 종이에 쓰는 것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어음 2000만원 막아야 됨'이라고 써서 상자에 넣어 놓고 그 날까지는 염려를 안 하는 대신 수요일만 되면 염려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수요일이 되어 상자를 열고 염려를 했는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날 너무 근심이 되어서 염려 상자에 넣어 놓았던 것 중 어떤 문제가 자신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수요 염려 상자'라는 책을 썼고, 책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염려는 아무 효험이 없다. 염려는 무익하다.' 우리 몸에..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마을의 외딴 저수지에서 낚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낚싯대 앞에 앉아 있었지만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부자(父子)는 빈손으로 낚시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아들의 낚싯대에 큰 물고기가 걸렸습니다. 아들은 무척이나 신난 목소리로 아빠에게 자랑했습니다. 아버지는 흐뭇해하며 건져 올린 물고기를 보았는데, 배가 볼록한 것이 알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어종 보호를 위해 산란 어종 낚시를 금지하고 있었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물고기는 알이 가득해 잡을 수 없겠구나. 아쉽지만, 풀어주고 그만 가자." 그러자 아들은 펄떡이는 물고기를 보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그냥 가져가면 안 돼요? 이렇게 큰 물고기..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늘 고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지인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지인은 그의 고백을 듣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자네는 삶에서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세 가지를 계속해서 미루는 것 같네." "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지인은 미루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빚을 갚는 일인데 누군가로부터 받은 미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갚는 것인데 그런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네." 그는 이 말을 듣곤 자신에게 친절과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지인은 그에게 이어서 말했습니다. "둘째는 용서를 구하..
2001년, 한 사업가가 무려 300억 원이라는 거금을, KAIST에 기부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같은 사업가가 카이스트에 또다시 215억의 재산을 기부하여 많은 사람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기업이나 법인이 아닌 개인이 실행한 기부로 역대 최고의 기부액을 기록한 이 사업가는 ‘미래산업’의 정문술 회장입니다. 정문술 회장이 카이스트에 기부하면서 내건 조건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이 기부금의 집행을 카이스트의 이광형 교수에게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큰돈을 한 사람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정문술 회장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연구 발전이 안 되어서 우리 사업이 부진하여 회사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부탁..
미국의 발명가 펄 웨잇은 우연히 젤라틴 가루를 개발했습니다. 가루를 사용해 푸딩이나 젤리를 쉽게 만들 수 있었으며, 수천 가지 방식으로 응용해 요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펄은 이 제품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 확신하며 2년간 방문 판매를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습니다. 펄은 이웃 주민이었던 유능한 사업가인 프랭크에게 제품의 소유권을 팔았고, 다만 아내가 지어준 이름인'젤로(Jell-0)'만 유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프랭크는 사람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부들이 많이 보는 잡지에 광고를 실으면서 다채로운 디저트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책자를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무료 책자는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잘 보급됐고 더불어 젤..
미국의 강철왕으로 유명한 카네기(A. Carnegie)는 19세기 미국 산업계를 대표했던 재벌입니다. 그의 전성기 때의 재산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450조 원이라고 합니다. 사업가로서의 카네기에 대한 평판은 호불호가 나뉘었지만, 그는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하며 검소하게 살아왔고, 재산의 꽤 많은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카네기가 자신의 재산을 더 어려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눈 이유는 너무나 가난해서 비참하게 살아가야 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족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처음 이주해 왔을 때는 매우 가난하여 온 가족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수작업으로 테이블보를 만들었던 아버지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결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자식의 앞날을 항상 걱정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많은 후회가 남아있다는 것을 언제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지 못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못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했고 이런 실수와 후회를 아들이 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항상 말했습니다. "아들아 더 노력하고, 더 공부해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빈둥거리다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하면 앞으로 계속 후회만 하며 살 것이다. 너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이런 걱정은 아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아들은 사소한 실수를 하는 것도 겁을 내며 움츠러드는 소심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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