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초콜릿 회사 '페레로'에서 판매하는 '킨더 초콜릿은' 전 세계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어느 날 독일에서 판매하는 킨더 초콜릿의 포장지에 아랍지역 소년과 흑인 소년의 얼굴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평소에도 인종차별을 일삼던, 독일의 극우단체 '페기다'의 회원들이 페레로에 무차별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순수한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 광고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의 아이들은 광고모델이 아니라 독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습니다. 터키계 독일인인 '일카이 귄도안'과 가나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롬 보아텡'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페레로에서 마케팅 이벤트로 축구선수..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영국은 독일의 공격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귀중한 문화재가 처참하게 손실되었고, 영국 언론들은 매일 정부의 무능과 나약함을 꼬집었고, 영국 국민들은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절망의 나락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는 비상시국을 맞고 있다. 국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부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기사를 쓰자." 그날부터 영국 언론의 논지가 달라졌는데,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교회에 모여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의 기사를 게재했고, 국민들은 점점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군은 '희망'을 무기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절망의 언어는 절망의 인생을 낳습니다. 역경을..
1908년 독일에 살던 한 청년이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목을 매려고 허리띠를 풀어 목욕탕 고리에 걸고,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매단 후 의자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런데 허리띠가 낡아 끊어지는 바람에 죽지도 못하고 그냥 바닥에 처박혔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생각이 변하면서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죽다 살아났구나! 다행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모든 것이 희망차 보였습니다. "그래,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바로 쇼팽 음악의 최고 권위자인 루빈스타인의 이야기입니다. 절망의 끝에 서있다고 생각되더라도 희망을 가져보..
독일은 6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 인사를했습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 하였고, 그녀는 18 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의 나라에서 18 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의 앞선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Angelika Merkel)이며, 6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메르켈은 어제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넘겼고, 독일과 독일 국..
독일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장비와 뛰어난 실력의 의사들이 있었음에도 병원의 매출은 계속해서 줄었습니다. 곧 병원이 파산하겠다는 생각에 경영진은 난관을 극복 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고자 매일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나온 지침을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직원들이 숙지해야 할 매뉴얼이 200쪽이나 되었지만 그럼에도 매출은 조금도 회복 되지 않았습니다. 매출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불친절' 이었기 때문입니다. 친절은 매뉴얼로 만들 수 있는 지침이 아니라는 생각에 병원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규칙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1. 3m 앞에 고객이 있다면 미소 지을 것 2. 고객이 1m 앞으로 다가오면 인사할 것 3. 직원과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하고, 하루에 몇 번이든 반복..
1972년 제20회 독일 뮌헨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마라톤 선수 중 프랭크 쇼터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쇼터는 그때까지 미국 언론에서도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 무명 선수였습니다. 더구나 예일 대학교 출신의 엘리트였기에 쇼터는 공부만 했던 사람이 무슨 육상을 하냐면서 오히려 차별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쇼터는 뮌헨 올림픽 10,000m 경기에서 5위를 하였고 마라톤에서 2시간 12분 19.8초의 기록으로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3년 일본 비와코 마라톤 대회에서는 달리는 도중 복통을 일으켜 심판의 허가를 받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자신을 앞서 나간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다시 은메달을 차지하여 미국 최고의..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젊었을 때 법원에서 견습 서기로 잠시 일했습니다. 어느 겨울, 난롯가에서 동료들이 장래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다들 장관, 총리 등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서기의 바로 윗자리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동료들은 꿈이 작은 그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사나이의 포부가 뭐 그런가! 좀 꿈을 크게 가지면서 살게!"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장 이룰 수 있는 희망을 말한 것뿐이라네." 비스마르크는 그렇게 한 단계씩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올라갔으며 이후 '철의 재상'이라 불리며 독일의 초대 총리가 되었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큰 ..
2차 세계대전이 전 세계를 뒤덮고, 포악한 나치의 군대가 유럽을 유린하고 있을 때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을 학교에 갑작스럽게 독일군이 들이닥쳤습니다. 어린 학생들과 교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학생들 중 가슴에 별 표시를 달고 있는 유대인 아이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이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은 어린 유대인 학생들을 거칠게 끌어냈고, 아이들은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코르자크'라는 선생님이 총을 든 독일군을 밀치며 달려와 울고 있는 학생들을 두 팔로 꼭 안아 주었습니다. "당신 뭐야! 너는 유대인이 아니잖아. 방해하지 말고 저리 비켜." 독일군은 코르자크 선생님을 아이들에게서 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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