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조가 했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지역차별을 극복하는 통합의 정치였다고 합니다.
정조 이전에 가장 큰 차별을 받은 곳은 서북 지역과 동북 지역(평안도와 함경도)이었다고 합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끼고있는 이 지역은 일찍부터 한양을 중심에 두고 사는 경화사족이나 아니면
삼남지방의 유림들로부터 오랑캐인 여진족과 가깝게 지내는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인식으로 조정에서는 북쪽에 사는 이들을 등용하기를 꺼렸고, 실제로 이 지역 사람들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오랑캐와 비슷
하다는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징옥과 이시애의 역모 사건이 발생하면서 차별은
더욱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세조는 이시애의 반란까지 진압한 후부터는 아예 서북 지역 무사들의 무과시험을 금지
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분노와 설움으로 나라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경도 백성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의 위기가 처했을 때 전혀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고, 오히려 적들에게 협조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함경도 백성들은 선조의
큰아들 임해군을 잡아 왜군에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정조는 즉위하고 나서 즉위년(1776)에 서북무사들의 차별을 전면 철폐하고, 1788년(정조 12)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창설, 서북무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조선 정부의 잠재적 위협
세력이었던 이들이 나라에 충성하는 장용영 군사들이 된 것입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늘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하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조는 경연 시간에 절대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정조가 어려운 질문을 하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신하들이 무안해할 것 같아 의도적으로 어렵지 않은 질문을 해서 모두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조는 신하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조는 아래 문장을 자신의 침실 벽에다 써 놓고 늘 가슴에 새겼다고 합니다.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
'마음의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의 중요성 (0) | 2021.02.09 |
---|---|
마음으로 연습하라 (0) | 2021.02.09 |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 (0) | 2021.02.08 |
김과장과 김부장 이야기 (0) | 2021.02.06 |
이것은 무엇일까요? (0) | 2021.02.06 |
- Total
- Today
- Yesterday
- 감동글
- 개정안
- 행정사
- 과학기술
- 입법예고
- 빅데이터
- 네트워크
- 디지털전환
- 지자체
- 공공기관
- 정보통신
- 인공지능
- 플랫폼
- 정부지원
- 중소기업
- 인허가
- 코로나19
- 개인정보보호
- 정부정책
- 시행령
- 가이드라인
- 4차산업
- 행정안전부
- 행정법률
- 개인정보
- 좋은글
- 메타버스
- 교훈
- 정보보호
- 마음의양식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