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교육은 18개월간 학교에 다닌 것이 전부, 오하이오강의 나룻배 사공에서 잡화점 및 우체국 직원, 측량기사 등 열 번도 넘게 직업이 바뀌었고, 하는 일마다 실패해서 주위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던 인물입니다. 이후 법률 사무소에 취직하며 법률 공부를 했는데 낙방 끝에 겨우 변호사가 되었고 마르고 볼품없는 얼굴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세 번 낙선, 상원의원 선거에도 낙선 등 실패의 고배를 마시다 겨우 당선되었습니다. 숱한 도전에 실패했지만 결국 이겨낸 그는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링컨은 유전적으로 우울증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9살 때 어머니의 죽음과 연속된 불운과 고난으로 인해서 더 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링컨..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백악관 옆에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링컨은 가끔 백악관 창가에서 학교 운동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즐겨봤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링컨이 창밖을 내다보니, 한 소년이 몇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울고 있고, 아이들은 그 소년을 가난뱅이라고 놀려대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그만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홀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깨끗한 복장과 구두를 반질반질하게 닦고 등교하라고 했지만, 소년의 구두는 너무 낡아서 광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링컨은 이 소년에게 선물해주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소년의 집에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가 배달됐습니다. 그 속에는 가족들에게 필..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하자 내각 구성을 위해 각료를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서관에게서 한 사람을 추천받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그 사람의 이름을 듣곤 단번에 거절해서 비서관이 궁금해 이유를 묻자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소." "하지만 그 사람은 얼굴에 책임이 없지 않습니까? 얼굴이야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그러자 링컨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세상에 처음 나올 때는 부모님이 만들어준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이네."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살면서 반복된 우울, 웃음, 걱정,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는 그 ..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해 세상을 떠났을 때 국방부 장관이었던 스탠턴은 링컨을 애도하며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정치적 동반자이자 든든한 조력자였던 스탠턴, 사실 그와 링컨과의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변호사 시절, 두 사람은 특허권 분쟁 소송에서 만났고 이미 유명했던 스탠턴은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촌스럽게 생긴 변호사 링컨을 공공연히 무시하며 무례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후 링컨과 스탠턴의 라이벌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둘은 정치적으로 계속 대립하였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스탠턴은 더욱 링컨을 비난하며 다녔습니다. 그러던 1896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스탠턴의 입지는 좁아졌고 정치적인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게티즈버그 전투 때 링컨은 마이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편지 한 통을 함께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마이드 장군.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한다면 장군은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 에게 공개하시오! 링컨 대통령의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자신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춘 모습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가 아닐 까요? 이것이 바로 링컨이 죽어서도 자신의 지도력을 인정받는 이유입니다. 지도자는 자기가 먼저 희생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에이브라함 링컨은 종종 부상당한 병사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한 번은 의사들이 심한 부상을 입고 거의 죽음 직전에 있는 한 젊은 병사에게 링컨을 안내했다. 링컨은 병사의 침상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겠소?" 병사는 링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는 간신히 이렇게 속삭였다. "저의 어머니에게 편지 한 통만 써 주시겠어요?" 펜과 종이가 준비되자, 대통령은 정성스럽게 젊은이가 말하는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보고 싶은 어머니! 저는 저의 의무를 다하던 중에 심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아무래도 회복되지 못할 것 같네요. 제가 먼저 떠나더라도 저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자동차에 필요한 수많은 부품들을 발명한 찰스 케터링은 자신을 실패 전문가라고 불렀습니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한 케터링은 실패에 낙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3가지 조언을 남겼습니다. 1. 정직하게 실패를 인정하십시오. 2. 실패를 이용하십시오. 3. 실패했다고 포기하고 무력해지지 마십시오. 케터링은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에 두려워하기보다 극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던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실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험하고 미끄러웠습니다. 때로는 발을 헛디뎌 길 밖으로 굴러 떨어질 때면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았지만 스스로 '길이 약간 미러울 뿐이지 낭떠러지는 아니야'라고 되뇌이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 링컨의 생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며 많은 책을 읽으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4살 때 여동생이 죽었으며, 6살 때부터 일을 했으며, 9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할 약혼자도 갑자기 죽어서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 병원에서 6개월간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사업을 하다 두 번이나 문을 닫았고, 각종 선거에서 8번이나 낙선했다. 두 아들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평생에 걸쳐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그 때마다 좌절과 포기를 하지 않고 실패를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수많은 책과 어머니가 물려준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지혜를 얻었으며,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승리로 장식했다. 게티스버그 연설등 명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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