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왕 카네기는 한 시간에 2센트의 급료를 받는 하급 노동자에서 출발했다. 그런 그가 말년에는 총 3억 6,500만 달러나 기부할 만큼 큰 부자가 되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상대방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카네기는 그의 형수가 예일 대학에서 공부하는 두 아들 때문에 병이 날 지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들들이 자기 공부에 바빠서인지 집으로는 한 장의 편지도 보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걱정이 된 형수가 답장이라도 한 번 보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띄어도 그들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에 카네기는 편지쓰기를 싫어하는 조카들에게 답장을 받아내는 일을 두고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100 달..
평생 힘겨운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노력해온 한 청년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방문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물건을 팔기 위해 한 노인의 집을 방문한 청년은 그 집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도 아니고 오래된 골동품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이 쓰러질 듯 놓여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어딘지 우울한 기분마저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 아래와 같이 짧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바로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그림과 ..
미국의 강철왕으로 유명한 카네기(A. Carnegie)는 19세기 미국 산업계를 대표했던 재벌입니다. 그의 전성기 때의 재산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450조 원이라고 합니다. 사업가로서의 카네기에 대한 평판은 호불호가 나뉘었지만, 그는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하며 검소하게 살아왔고, 재산의 꽤 많은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카네기가 자신의 재산을 더 어려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눈 이유는 너무나 가난해서 비참하게 살아가야 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족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처음 이주해 왔을 때는 매우 가난하여 온 가족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수작업으로 테이블보를 만들었던 아버지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결국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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