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줄을 배꼽까지 내려뜨린 할아버지가 옆자리의 진주 목걸이를 한 할머니에게 나이를 묻는다. 예순둘이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감탄한다. "좋은 나이요. 나는 예순일곱인데 내가 당신 나이라면 못할 게 없을 거요.” - 은희경의 〈서른살의 강〉 '연미와 유미' 중에서 - 22살 때 난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나는 32살이고, 10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못 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망설여진다면 10년, 아니 딱 5년 후 내 나이와 그때 가질 생각들을 먼저 헤아려 보기로 했습니다. 뭐든지 시작할 때가 가장 빠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산을 23번 올랐으며 수많은 등산길을 확장해서 오른 '휘트니 할머니'라고도 불리는 '훌다 크룩스'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녀가 66세 때, 그동안 시도해 보지 못했던 삶의 영역에 도전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바로 등산이었습니다. 그래서 휘트니 산을 시작으로 91살 때까지 무려 97개 봉우리의 등정에 성공합니다. 이러한 그녀를 위해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1991년 휘트니 산에서 가장 험하고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의 이름을 '크룩스 봉'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나이 91세에 해발 3,776m가 되는 일본의 후지산 정상에도 깃발을 꽂았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에 이런 문구를 적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힘..
미국 대중문화계의 스타이자 코미디의 전설이라 불리는 조지 번스. 1996년 그의 나이 10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부인 앨런과 함께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영화 등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65세가 되었을 때 아직도 여드름이 있다며 나이 듦을 유쾌하게 맞섰고, 80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영화 'The sunshine boys'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받으며 그에겐 나이는 방해물이 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고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었고 인생의 보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에서 공표한 '노인의 정의'입니다. · 자신이 늙었다고 느낀다 · "이 나이에… " 라는 말을 자주한다 ·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느낀다 · 청년들의 관심사와 활동에 관심이 없다 · 과거를 그리워 한다 · 듣지는 않고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노인의 정의'에 대한 내용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이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과 생활습관에 따라서 같은 나이에도 신체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최근 UN에서는 청년의 기준을 '18세 ~ 65세'로 정했습니다. 급변하는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을 고려할 때 65세도 청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나는 노인처럼 살고 있는지, 청년처럼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나요?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은 70세 이후에 이루어 졌습니다 철인 플라톤은 50세까지 학생이었습니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벽화를 완성한 것은 90세 때였습니다. 파테레프스키는 70세 때도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베르디는 오페라 "오셀로"를 80세에 작곡했고 "아베마리아"를 85세에 작곡했습니다. 미국의 부호 벤더필트는 70세 때 상업용 수송선1백척을 소유했는데 83세로 죽기까지 13년동안 1만척으로 늘렸습니다. 문호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를 60세에 시작하여 82세에 마쳤습니다. 미국의 현대 화단에 돌풍을 일으킨 "리버맨"은 사업에서 은퇴하고 장기나 두려던 차에 어떤 아가씨의 충고를 받아들여 단, 10..
2006년, 80대의 김연심 할머니는 안양시민대학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김연심 할머니는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살림 때문에 초등학교를 6개월 다닌 것이 학업의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한글도 알지 못한 채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되었고 결혼을 해서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숙박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 희생을 하다 보니 공부가 하고 싶었던 소녀는 어느새 80대의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습니다. 배움의 갈증을 채우려고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수업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웠습니..
모델 최순화 씨. 2018년 3월,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올랐고 가을·겨울 시즌 디자이너 '키미제이' 쇼에 섰습니다. 2019 봄여름 시즌 '더갱' 런웨이를 걸었습니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요가복 브랜드의 전속모델로 발탁되어 활동 중입니다. 패션 잡지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170cm의 시원한 장신을 당당히 표현하고 표정은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모델 최순화 씨, 그녀는 현재 78세입니다. 그녀는 하얀 백발을 염색하거나 감추지 않습니다. 그녀의 백발에는 한 사람의 아내, 두 아이의 어머니로 어려운 가정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돈을 벌기 위해 힘든 병간호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72세의 나이로 모델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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