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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

터프가이원 2020. 1. 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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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가 정립되기 1년 전, 유비가 익주(益州) 를 점령하고 한중(漢) 을 평정한 다음 위나라 조조의 군대를 맞아

한중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싸움은 여러 달에 걸친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유비의 군대는 제갈량의 용의주도한 전술로 넓은 땅을 확보한데 반하여 조조군은 내부 질서가 문란하고 탈영병이

속출하여 공격도, 수비도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조조가 진퇴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신하 하나가 전황을 보고하며 후퇴 여부를 물었다.

닭고기를 뜯고 있던 조조는 닭갈비(鷄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동작만 되풀이했다.

조조의 그런 행동을 본 신하가 어리둥절해 하며 밖으로 나와 주부(主簿)인 양수(楊修)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양수가 그 이야기를 다 듣고는 갑자기 장안(長安)으로 귀환할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다른 참모들이 놀라 양수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갑자기 왜 철수 준비를 하시오? 승상께서는 철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소."

그러자 양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닭의 갈비는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내버리기도 아까 운 것이오.

한중을 여기에 비유한 것은 승상께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겠소?"

과연 그 이튿날, 조조는 양수의 예상대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조는 이익이 없다고 하여 한중에서 후퇴했으며, 그곳을 확보 한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 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위나라는 촉한(蜀漢)과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에 실려 있으며 , 오늘날 닭의 갈비는 그다지 쓸모 있는 것은

아니지만 ,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라는 비유로 쓰이고 있다.

《진서(晉書)》 〈유령전(劉傳)〉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진(晉)나라 초기에 죽림칠현(竹林) 가운데 유령(劉金)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이 술에 취해서 지나가던 행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방이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이 점잖게 말했다.

"보다시피 내 몸은 '닭갈비(鷄)' 처럼 빈약해서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상대는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는 싸움을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계륵' 은 빈약한 사람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게 되었다 .

출처 :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 한자성어(미리내공방 편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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